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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화력 아이오와급 전함의 활약과 퇴역한 이유 20세기 중반까지 전함(Battleship)은 열강의 상징처럼 여겨진 엄청난 무기였습니다. 적의 공격을 전부 버텨내며 한방에 적을 수장시켜버릴 수 있는 화력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덩치가 크고 만들기 까다로웠으며 함포의 사거리 밖에서 부터 공격을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등장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거포로 응사하는 해전 방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 1차 대전이 끝난 후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호 해군력 감축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핵심 규제 대상은 거함의 상징인 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불만이 많았고 결국 조약탈퇴 후 유예기간이 끝나자 마자 해군력 확대에 나섰고 사상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급을 건조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사라질뻔했던 몰락작전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미국의 리틀보이와 펫맨 이 두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면서 무조건 항복을 외치며 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졌지만 쉽게 항복하지 않고 섬에 흩어져서 게릴라전을 펼치기도 하며 결사항전을 펼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미군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 하고도 항복을 받아내지 못할 경우에 대해 대비책을 세우게 되었는데 바로 이 작전 이름이 이었습니다. -1945년 11월1일을 기해 미국 500만명과 영군군 100만명이 일본 본토에 상륙, 점령작전에 들어간다. 작전 기간은 최대 2년. 필요하면 원자폭탄을 7발까지 투하한다-미국이 구상했던 몰락작전의 목적은 일본을 지도상에서 삭제해버리는 계획이었습니다. 서구 국가끼리 전쟁에서 전사자..
은폐속에 묻힐뻔 한 영화 실미도의 주인공 684부대 1968년 1월 21일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로 유명한 으로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하였고 총 31명중 투항한 김신조 단 한사람만 살아남고 2명은 도주 28명은 모두 사살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부는 북한에 보복할 목적으로 무장공비 수와 같은 31명을 모집해 '김일성 거처 습격'등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회고록에서 684부대는 박정희의 재가를 받아 본인이 만들었다고 밝혔으며 2005년 국방부 '실미도 진상 조사 TF'를 통해 중앙정보부가 창설했고 공군이 관리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생포된 김신조의 모습 - "6개월만 참으면 호강시켜 준다"-684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