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 큰 공을 세운 KLO부대는 얼마의 보상을 받을까>
우리나라의 뼈아픈 과거 6.25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작전인 인천상륙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KLO부대가 개인 기록이 없어 보상과 서훈이 불가능하며 국가가 소집한 것이 아닌 자생적 미군 산하 단체로 국가가 보상할 책임이 없다는 점을 들어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1948년 8월 미국 극동군사령부 정보처에서 대북첩보 활동을 위해 켈로(KLO)부대 만들었습니다. 미국이 북한 지역의 지리와 언어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주로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북출신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KLO(Korean Liaison Office)는 번역하면 "한국 연락 사무소","한국 연락반","주한 첨보 연락처"로 특수부대적 성격을 가리고 평범한 통신 사무소로 위장하기 위한 이름으로 케이엘오를 줄여서 <켈로부대>라고 불렸습니다.
켈로부대는 미군이 운용했으나 구성원은 전원 한국인이었고 비공식적이고 변칙적으로 운용하던 특수부대였기 때문에 정식 미군 소속도 아니고 한국군 소속도 아니기에 군번도 없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켈로부대로 활동 할 당시 전사하거나 행방불명, 임무완료 후 민간으로 복귀등의 사유로 대한민국 육군 소속으로 편입되기 전 켈로부대는 떠난 인원에 대하여 90년대 후반경 부대원 명단 복원 및 신원 확인 작업등이 이루어 졌으나 완전히 다 복원되지는 못하였습니다.
- 켈로부대의 활약상 -
가장유명한 작전으로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인천에서 9km가량 떨어진 작은 섬 팔미도에 있는 국내 최초의 등대이자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팔미도 등대'는 연합군의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그 중심에 켈로부대가 있었습니다.
1950년 9월 14일 밤 인천상륙작전의 수로를 확보하는 길목인 팔미도 등대 점등에 성공하여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블루 드래곤 작전'은 미군 조종사 구출작전으로 대외비로 지난 60년간 공개되지 않았었습니다.
1952년 1월부터 시작한 이 작전은 평양 북쪽에 불시착 한 미군 조종사 5명을 찾는 임무로 생환 가능이 희박했으며 당시 켈로부대원 170여명이 투입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북한군 중공군과의 교전끝에 전원 전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화천발전소 탈환 작전'은 성공한 작전으로 당시 화천발전소에 중공군 진지와 포병부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습이 쉽지 않았는데 켈로부대원들이 이 대포와 전차가 유엔군 정찰기를 속이기 위한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고 바로 중공군 진지를 공습하여 화천발전소 탈환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활약상들이 기밀사항으로 분류 되어 공유되지 않고 있으나 고려대학교 남광규 교수님의 연구에 따르면 4445회의 작전을 수행하고 적 7만여명을 살상하는 활약을 펼쳤다고 합니다.
- 켈로부대의 굴곡의 역사 '해산'-
켈로부대는 1953년 7월 휴전 이후 30여개 소부대로 늘었고 부대원 중 일부는 전사상자로 기록되었으며 일부는 1958년 현재의 제1공수여단인 '특전사 제1전투단'창설에 투입되었습니다.
간부급 대원들 중 700여명만이 장교로 임관했으며 일반 병사 1만2000명은 한국군의 재입대하는 것을 끝으로 해산되었습니다. 당시 간부들은 부대 내 계급에 따라 부사관이나 최고 '대위'인 위관급 계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유격대원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었기때문에 병사 역할을 맡았던 대원들은 병역법에 따라 '신병'으로 재징집되어 이등병, 일병 등으로 재입대해 그들의 많은 활약에 대한 명예를 인정받지 못하고 '이중복무'를 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8군이 뒤늦게 유격대원이 한국군에 배속된 사실을 알고 국방부에 항의 하였으나 그들이 미군에 배속돼 수행한 활동에 대한 보상은 일체 논의가 없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 켈로부대의 보상-
우리 군에 배속됐었던 '백골병단'과 '특수임무자'들이 각각 관련법 제정으로 보상이 이루워진 반면 켈로부대원으로 활동한 참전용사에게 지급하는 보상은 단 하나인 '6.25 전쟁 참전 명예수당'으로 매달 12만원이 전부라고 합니다. 전공에 따른 무공훈장이나 참전수당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는 과거부터 켈로부대원을 한국군에 배속시키면서 이미 급여를 지급하였으며 6.25 참전 수당과 현충행사를 지원하고 있는점 등을 들어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보상법안이 어렵게 통과 하였으나 법사위원회에서 좌절되었습니다.
20대 국회에서도 보상법안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현재 생존자 대부분이 80세 이상 고령자임을 생각하여 더 늦기 전에 보상이 이뤄져야 하며 시대적 환경과 제도적 여건 미비로 이들의 희생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루 빨리 정부와 정치권 유격대 단체가 절충점을 찾아 제대로된 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 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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